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성산 고분군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[[화랑세기|어떤 논란의 서적]]에서 [[소문국]](내지는 신라에 통합된 소문국)이 신라의 왕비를 배출하는 집단이었다는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.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야사적 차원으로 다소간의 스토리가 있으면 좋겠으나 학술적으로는 발굴 조사 성과 자체가 왕비를 배출하는 집단이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방증하는 것은 아니다. 즉 [[화랑세기 #s-2|화랑세기 필사본]] 자체에 대한 검증의 문제일 뿐이다. 의성군의 몇 안되는 관광지로 읍내에서는 꽤나 인기가 좋다. ~~무덤이라는 점만 빼면~~ 풍경이 좋아서 나들이 오는 사람들도 많이 들르는 곳으로 경치 때문에 웨딩 촬영을 하는 장면도 많이 볼 수 있다. 잔디가 아주 잘 깔린 점 때문. 참고로 금성산 고분군 안에 현대의 무덤들도 같이 있는데 덕분에 따로 [[벌초]]를 안 해도 고분 공원을 관리하면서 같이 벌초를 해준다. 그래서인지 의성군이 주무대인 영화 [[감동주의보]]에서도 촬영지로 등장했다. 다소 아이러니라면 지자체 차원에서는 1~3세기 [[원삼국시대]]에 해당하는 [[소문국]](조문국)을 위시한 컨텐츠로 밀고 있고 옆에 군립[[박물관]]으로 조문국박물관까지 있지만 정작 금성산 고분군은 소문국이 독립적이던 시절 이후인 [[신라]]의 주요 거점 고분군으로 다소 적절하지 않다. 하지만 언젠가는 신라 정복 이전 시기 관련 유적이 나올 가능성이 있고 주변에서 3세기대의 표지적 존재인 와질토기편이 채집되는 곳이 존재하고 있다. 특히 [[28번 국도]]변의 주차장 인근에은 문익점 면작 기념비가 있으며 주차장에는 푸드카, 화장실이 있어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. 성토의 모양은 봉구를 중심으로 수평단축 상태로 되어 있음이 밝혀졌다. 봉구를 조성하는 데 사용된 흙은 순수한 점토로서 그 양 또한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